2015년, 1회용 주사기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용한 주사기를
폐기하지 않고 다른 환자에게 다시 쓰다가 병을 옮긴 것이 알려졌습니다. B형 간염, C형 간염을 전염시켰습니다. B형,
C형 간염 모두 간경변 또는 간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B형 간염을
앓고 있거나 앓은 적이 있는 여성이 출산한 아이의 90%는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됩니다. 이런 심각한 병을 다른 곳도 아니고 “병원”에서 옮긴 것이죠.
그림 1. 바이러스성 간염의 경과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13년,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의 Scott Harrington이란 치과의사가
운영하던 치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니까요. 건강했던 한 환자가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C형 간염과 에이즈(HIV)에 감염됐고, 보건당국이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시행한 결과
60여명의 추가 감염자를 확인했습니다. 당국이 그 병원을 조사한 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한
것은 6년동안 멸균유효성 검사 장부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멸균유효성 검사.
생소한 이 단어. 무엇이길래 중요하다는
것일까요?
병원에서 환자에게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구는 1회용이
아닙니다. 치과에서 쓰는 기구들도 마찬가지여서 아래 그림에 보이는 가장 기본적인 치과 검진 기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살을 꿰매는 바늘도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사용한 기구를 세척하고 멸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병을 옮기는 세균, 바이러스와 각종 독소들이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척과 멸균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다른 환자에게 사용한 기구를 새로운 환자에게
안전하게 다시 쓸 수 있습니다.
그림 2. 치과 검진 기본 기구
멸균유효성 검사는 이렇게 중요한 ‘멸균’이
제대로 되었는 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멸균기에 기구를 넣고 작동시킨다고 해서 항상 제대로 멸균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멸균기 특성에 맞도록 기구들을 잘 배열해야 합니다.
증기 멸균기라면 증기가 아래에서 위까지 잘 올라오도록 포장된 기구들을 세로로 세워야 합니다. 가로로
놓으면 증기를 가로막아 그 위에 위치한 기구들은 멸균되지 않기 때문이죠. 가스나
플라즈마를 쓰는 멸균기라면 멸균제가 주입되는 시점과 양등이 모두 적절해야 합니다. 모든 기계가 그렇듯이
멸균기 부품에도 수명이 있고 관리 상태에 따라 성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멸균기 문의 고무 패킹이 닳거나
찢어지면 꽉 닫히지 않고 압력이 낮아져 멸균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조건들이 다 잘 맞아 떨어져야
기구가 멸균됩니다. 때문에 항상 멸균이 제대로 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멸균유효성 검사가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멸균”과정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모두
죽일 정도로 “유효”했는지 보는 검사입니다.
활을 쏩니다. 화살이 과녁에 정확히 꽂혔는지
알아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녁을 검사하는 것입니다. 화살을 바른 자세로 쏘았더라도 바람이 불거나, 화살대의 깃털이 떨어지거나, 화살촉이 무뎌졌다면 화살은 과녁의 가운데에
꽂히지 않습니다. 멸균유효성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활을 쏘고 과녁을 확인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멸균은 다들 합니다.
오클라호마의 그 치과에서도 멸균까지는 시행했습니다.
2015년
주사침 재사용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한 병원은 “우리는 모든 기구를 멸균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멸균기에 넣었다고 항상 모든 균이 사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효성 검사 여부가 그 병원의 감염관리 수준입니다.
